신문 이야기

신문은 왜 아직도 읽히고 있는 것일까?

꿍금이 2015. 12. 29.



 도대체 신문은 왜 읽어야만 하는 것일까? 요즘 같은 디지털 광(光)스피드 시대에, 더구나 필요한 것이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인터넷 검색으로 즉석에서 거의 다 해결하는 지금도 신문은 왜 읽어야만 한다고 유난을 떠는 것일까?

  하지만 여기에 대한 답변은 너무나 명백하다. 예나 지금이나, 아니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에는 좀처럼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신문이 곧 세상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세상 이야기를 절묘하게 담고 있는 중요한 자산이 신문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문을 외면하면 세상 이야기에도 멀어지고 만다. 세상의 흐름을 그만 놓치고 마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도 텍스트(text)이다. 매우 효율적인 기능임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더구나 텔레비전을 포함한 영상매체는 시각적이고 생동감이 넘쳐난다. 속도가 대단히 빠른 매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인터넷의 정보 기능은 단지 정보 습득에 편중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세상 이야기를 절묘하게 담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른다.
  영상매체도 다르지 않다. 정보의 수집 기능에 치우쳐 있는 영상매체로는 신문만큼 종합적으로 정보를 알려주지 못한다.
  책, 잡지 같은 인쇄매체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고 보면 된다. 인쇄매체는 비록 즉각적이고 돌격적인 면이 크게 떨어져도 인터넷이나 영상매체와 달리 심층성에서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인쇄매체가 심층성에서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해도 하루 단위로 생생한 정보를 담아내는 신문의 신속함에는 절대로 따라가지 못한다. 그날그날의 생생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접근한다는 점, 정보의 용도 부분에서 다른 그 어떤 매체보다도 유용하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른바 '정보의 바다'를 헤쳐나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신문만큼 유용한 매체는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지난 1950년대 이후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등의 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번번이 '신문은 곧 쇠퇴할 것'이라는 예측이 꽤 유력하게 여겨졌다. 인쇄매체인 신문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의 신속성과 직접성을 결코 극복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러한 예상은 매번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뉴 미디어의 급속한 보급이 이뤄질 때에도 신문의 유효성은 조금도 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자적인 기능과 영역으로 뉴 미디어와의 차별성을 좀 더 뚜렷이 하면서 육중한 존재감으로 그 위치를 견고하게 다져오고 있다.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이후 300만 부 안팎이던 발행 부수가 뉴 미디어의 급속한 보급이 이뤄지는 환경 속에서도 그 위치를 잃지 않더니, 현재 매일 아침 1,000만 부 이상을 찍고 있는데서 그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신문 역시 예외가 아니다. 1950년대 이후 신문 가짓수가 두배 이상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뉴미디어의 보급이 매우 폭넓게 확산되고 있는데도 전체 발행 부수가 세 배 이상 크게 늘어난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렇듯 지구촌의 신문은 지난 반세기 동안 고속 성장을 구가해왔다. 뉴 미디어가 넘쳐나는 미국 등지에서 최근 신문의 정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제외하면, 신문은 여전히 대중 정보 매체의 핵심적 위치를 확고하게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지구촌의 청년 층 역시 신문을 비롯한 전통적인 미디어를 더욱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매체로 인식하고 있다. 청년층에서 인터넷 등의 뉴 미디어를 이용하는 시간이 크게 늘었지만 정확도와 신뢰도 측면에서는 여전히 신문 등 전통 미디어를 더욱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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